우산 Umbrella Editionn: 20 , 2018

"이 우산은 용호 동굴 미술관 YUM에서 전시하는 아티스트 박의 작품 <우산 edition : 20>입니다. 이 우산은 비를 막기 위해서 혹은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 여러분의 필요에 의해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산이 필요하신 분은 사용하신 뒤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라진 뒤에 나타나는 것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낮과 밤, 자야하고 일어나야하는, 일을 나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끈덕진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한 되풀이를 통해 삶이 채워진다는 감각은 모두가 의식하지 않아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반복성은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반복에서부터 추상적으로 시간을 조직하거나 공간에 거하며 일어나게 되는 반복을 포함한다. 인간의 '일상'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또한 너무나 잘 감춰져 있기에' 이 속에서 미묘한 차이의 반복이 일어나고, 반복된 것들 사이에서 차이가 생기는 부분을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달라질 가능성의 공간 또한 다름 아닌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다. 사소한 것들 속에서의 반복인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일상성을 극복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늘 가던 길을 걷고 늘 보던 것을 보고 늘 비슷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하기 위해 지나가는 곳.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기억과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언어화하는 작업을 해온 작가 박혜민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이 일상적 지하보도에 우산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똑같아 보이지만 저마다 1부터 20까지의 작품 에디션이 표시되어 있는 우산 20개에는 각각 우산을 쓰는 것이 퍼포먼스임을 알리는 텍스트들이 프린트되어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지나가는 행인에게 필요한 생활용품으로 변모한 우산이 그것을 쓰고 걷는 사람과 함께 작품이자 퍼포먼스가 된다. 작품이었지만 생활용품이기도 한 우산은 그렇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삶을 따라간다. 이 글을 쓰는 도중 어딘가에서 설치 작품으로 만들어진 우산 100여개가 '전부' 도난 당해 경찰서가 '수사중'이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작품을 대하는 시민의 문화의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시내 어딘가에선 공무원들이 시민의 우산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우산 수십 개를 높은 공중에 설치했다. 도난 당하지 않도록 감시당하는 우산들과 공중에 높이 떠 있는 우산들, 시민의 문화의식과 시민의 우산은 함께 갈 수 있는 단어일까. 야외에 우산이 놓여있고 비가 오는 날 마침 누군가 우산이 없어서 그것을 쓰는 자연스러운 장면을 떠올려본다.
일상은 다양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차이를 외면하고 그것을 반복으로 보는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앙리 르페브르에게 우리가 보내는 매일 매일의 삶은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동질하지 않으며 조금씩 다른 어떤 것이다. 이것은 그냥 반복이 아닌 순환적 시간에 따라 일정한 리듬이나 주기를 형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일상생활이 타성에 젖은 현대인의 삶 속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며 앞서 말했듯 그것을 극복하는 자리도 다름 아닌 일상이다. 이를테면 똑같이 비가 오는 날, 똑같이 걷던 길에서, 낯선 우산을 만나고 그것을 써보는 것. 새로운 리듬으로 하루를 보내보는 것. 우리는 여기서 작품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사물이 본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곳은 일상적 사물들이 타성에 젖은 일상과 만나는 장소로 변모한다. 그렇게 소리없이 사라지는 우산과 함께 이름 모를 이들의 숨겨진 일상이 나타나는 곳에서 잠시 후 비가 그친 뒤 돌아올 것들을 기다려본다. [글_전솔비]


 
우산 edition : 20_가변설치_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