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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민 개인전, 보통의 국가들
보통의 국가들 @스페이스 55
2019. 10.4-21
고윤정
‘보통의 국가’라는 단어는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 사회의 국가 의식이나 정치, 경제 시스템의 ‘특수성’에 대해서 논의할 때 사용하는 관용구로 과도하게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고, 의사 결정이 불투명하며, 시장과의 관계에서 국가의 간섭이 이뤄지는 우익적 시스템에 ‘반하는’ 뜻으로 쓰인다. 즉, 민주적이며 이상적인 의사 결정의 과정을 거치며, 자율성을 꿈꾸는 국가가 ‘보통의 국가’인 것이다.
박혜민은 이러한 ‘보통의 국가’에 대한 의미를 기반으로 그동안 국내외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 보는 워크숍을 지속하고 있다. 특정 커뮤니티의 참가자들과 진행되는 워크숍은 몇 차례에 걸쳐 만들고 싶은 국가의 개념, 실행하고자 하는 교육 과정, 새로운 건설 사업, 법률과 정책을 만들거나, 이윤의 창출에 대한 개념들을 설립한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국가관에 대하여 ‘반’하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오늘의 현실을 딛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꿈꾸어가는 활동이기도 하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국가는 총 4개의 국가로, 오스트리아 한인 2세들과 만든 <위도사이언스공화국>, 인천 청소년들과 만든 <벨라시우합중국>, 선일여자 중학교 인권동아리 학생들과 만든 <라온>, 미네르바 대학교 학생들과 만든 <팬카탄>이 그것이다. 그중 이번 개인전에서는 소규모 커뮤니티로 이루어진 <팬카탄>을 소개한다.
<팬카탄>은 ‘모두의 선을 위한 이기주의가 장려된다’를 국가 표어로 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분권제를 시행하고 있기에 커뮤니티별로 특이점이 뚜렷한다. 개인 재산의 사유화는 인정하지만 유산 상속은 인정하지 않아 사후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며, 소득세 외에도 자동차 보유세, 육류 환경세, 지역 커뮤니티 봉사세 등의 다양한 세금을 납부해야하는 국가이다. 박혜민은 이번 전시에서 <팬카탄>에 대한 설명과 워크숍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빌려와 전시 공간 안에서 <팬카탄>을 구현한다.
오늘날처럼 나라의 근간이 엎치락, 뒷치락 하는 과정을 겪어온 우리에게는 ‘자율적인 의사 결정’,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논리가 힘들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시스템에 의해서 희생되기도 하고, 그 과정이 심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모두에게 매우 힘겨운 싸움이 되기도 한다. 박혜민은 이러한 오늘의 현실에 대해서 장기간의 토론을 통하여 결과를 도출해 내는 민주적인 과정을 직접 실천한다. 그리고 관객은 전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실천적인 과정의 현장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