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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민 – 가짜과 진짜 그 어디에선가
고윤정

박혜민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런던에서 공부 후 현재 인천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시를 살면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일들과 사회적 구조에 대한 관찰, 그 안에서 발견되는 차이에 대해서 시각적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한다.

도시적 삶, 가짜와 진짜 사이
박혜민의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부분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들을 허구로 만들어 내는데, 그 사실이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사이에 있다보니 어느 것이 가짜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관람객이 깜빡 속을 때가 있다. 그만큼 ‘가짜’를 파고드는 작가의 관찰력이 매우 날카롭다는 뜻이다.
2012년 런던에서 돌아온 뒤, 작가는 이라는 여행사를 차린다. 이 여행사는 아직까지도 사이트(http://hparktravel.com)가 존재하고 있는데, HPARK 여행사를 통하면, 가상 도시 중국의 ‘쑤이’와 인도의 ‘씨올라’, 아프리카의 도시국가 ‘씨엘루르’를 여행할 수 있다. 세 나라 모두 언뜻 들으면 정말 중국이나 인도에 있을 것 같은 지방의 이름이지만 이 도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혜민은 누가봐도 진짜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장치를 심어 놓는다. 여행책자의 표지나 내지는 진짜 여행책자와 같은 포맷을 최대한 유지하고, 인터넷 사이트에도 여행안내자의 소개라든지, 전화번호,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안내 등등이 일반적인 여행사 사이트와 매우 유사하게 쓰여 있다. 실제로도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에도 전화가 올 정도로 이들의 대한 안내는 매우 감쪽 같다.
실제로 이 세 도시는 인천의 차이나타운, 포천의 힌두 사원, 이태원의 아프리카 음식점 등 한국에서 실제 그 나라의 분위기가 많이 나는 장소들이다. HPARK 여행사를 통해 이들을 함께 여행하고, 다큐를 촬영하면서 관람객들은 실제 여행지가 아닌 한국의 다문화적인 분위기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걸어서 세계로>라는 다큐까지 만들면서 가짜 여행지 체험은 영상 매체를 통해 보다 ‘진짜’에 가깝게 보인다. 작가는 ‘쑤이’ 음식과 ‘씨올라’ 음식을 준비하여 사람들에게 대접하지만 그것은 한국에서 자주 맛볼 수 있는 카레와 짜장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보통의 국가들>(2016~)에서 박혜민은 특정 그룹의 참여자들과 워크숍을 통하여 참여자 모두가 살고 싶은 국가와 국가 시스템을 구현해 보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특정 그룹의 경우에는 이미 그룹이 지어질 때부터 이들은 어떤 국가에 관심이 있는지 관심도가 좁혀진다. 참여자들에게 이민, 교육, 산업/환경, 정치/행정, 성장/분배에 대한 카테고리에서 원하는 국가상을 고르고, 이를 주제로 수 차례의 워크샵을 가지며, 이를 기반으로 가상의 국가, 국기, 국가 시스템을 결정한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까지 위도사이언스 공화국(Republic of Widoscience)', '벨라시우합중국(United States of Vela Siu)', '라온(Laon)'의 3개의 가상국가를 만들었는데, 어린이가 참여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국가의 이상향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다.
두 개의 사례에서 보았을 때, 박혜민 작가의 작업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지만, 그 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매우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중심으로 진행을 하여, 작업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을 끌어들이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가짜인지 아닌지 참여자는 크게 여의치 않고,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과정, 목표, 혹은 단순한 즐거움으로 작품에 스스럼없이 개입한다. 작가는 ‘일반적’인 기준, 사회적인 기대치, 관례적인 사고를 통해 상투적인 기표들을 선보인다.
작가가 이렇게 특정한 사회 관계 혹은 관계적 형식들을 포착하고 작동시키는 과정은 문화적인 요소들 그리고 문화적 스펙타클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보여준다. 극사실적인 것, 완벽한 이미지들은 작품 속에서 매우 매혹적으로 작용한다. 일종의 유토피아를 보여주기도 하고, 유토피아를 경험하고 싶어서 참여자가 토론을 진행하기도 하면서, 참여자와 작가는 문화적인 텍스트 속에서 서로를 녹여내기에 이르는 데, 이는 참여자들의 마음 속에 사회적인 변화, 대안적인 미래에 대한 열망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참여과정이 자연스럽고, 작업의 전개가 매우 열려 있기 때문에, 이들은 집단적인 충동이나 행동으로 토론의 결과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적인 언어로 이를 우회하면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다. 특히 <보통의 국가들>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어떤 카테고리로 참여자를 모으는지에 따라 새로운 커뮤니티가 지속적으로 생성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적인 관심사들을 집중시킬 수 있다.
<만국거리를 지나 출구>(2017)의 경우, 이러한 가짜와 진짜의 기호가 섞여 진행된 영상작업으로 작가는 인천의 재개발 현장을 은근하게 비판한다. 인천은 구도심과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현장으로 명확하게 구분된 곳으로 특정 장소마다 각 지역의 개발 이슈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정치적 욕망의 장소이다. 작가는 동화마을이나 차이나타운처럼 관광지를 개발하여 부동산 이슈를 부추기는 인천시장을 뱅크시의 작품을 패러디하여 평소에 만나뵙기 힘든 ‘닥터 홍’ 예술가로 설정하고, 이러한 활동에 대해 역설적으로 보이도록 그의 예술 활동을 극찬하는 다큐를 만들었다. “닥터 홍을 아는 이는 없지만, 모두 그의 작품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에서처럼 다큐에 나오는 단어들은 “제일 닮고 싶은 인물, 닥터홍”처럼 유희적으로 인천의 난개발 이슈를 드러내는 것이다.

자발적인 관객참여
그런가하면 인천 숭의동에서 유휴 시설을 이용하여 진행된 <수봉다방>(그린빌라) 프로젝트는 관객과의 관계 맺기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이다. 인천에는 쇠락하거나 재개발 이후에 버려진 집, 공간들이 매우 많은데, 그 중 하나인 장소에서 약 3개월 간에 걸쳐 작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었다. 박혜민은 이 중에서 <밥먹고 가세요> 시리즈를 진행했는데, 관람객이 파나 양파, 라면 등 식자재를 갖고 오면 이를 그림으로 그려주고, 이런 재료들을 모아 부대찌개나 떡만두국을 선사한다. 방치된 공간의 예술적 활용과 주민들의 참여가 섞여 장기적으로 새로운 장소성을 만들어낸 프로젝트이다.
<수봉다방> 프로젝트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코스모스 다방>(회전예술) / 혹은 으로 변형되거나, 세종예술시장 소소에서 일부가 재현되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 맺기 퍼포먼스로 진행되었다. 때로는 요리사가 되기도, 때로는 여행가가 되기도 하면서 작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소통한다.
“소통하는 작가”라고도 자신을 소개하는 박혜민 작가는 관람객들과의 교류를 위해 여러 가지 단계를 거친다. 단기적으로 그림을 그려주고, 밥을 먹으면서 관람객들과 쉽게 친해 지기도 하지만, 씨엘루르 같은 곳을 여행하는 프로젝트에는 약 4년간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활동에서 만난 이들도 있다. 작가의 참여적 단계는 단순히 프로젝트의 일부로 참여하는 단계에서부터 삶의 일부분의 의미를 나누는 사람들에까지 다양하고 깊숙하다.
그 과정에는 공감을 얻어내는 ‘연관성’이 기반이 되어 있다. 사회적 규범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취향이 발견되기도 하면서 생기는 사람들끼리의 같음과 다름은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면서 마음의 문이 열리고, 서로의 연관성을 찾게 된다. 관객들은 박혜민 작가에게서 같은 인천 지역, 여성, 한국인, 집을 떠나온 사람들 등등의 사회적, 심리적 이유로 작가와 연관성을 맺으며 일시적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들은 서로의 연관성을 더욱 늘리게 되는 효과를 가져오는데, 박혜민은 함께 몸을 부딪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시간과 물리적인 연관성을 계속 만들어가고,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 이렇게 작가가 끌어내는 관객의 자발적 참여는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현장적 경험이 쌓여 있어야 하고, 참여자의 각각의 개별적인 특성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작가의 경험과 순발력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러 대상과의 대화 과정을 다루기 위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커뮤니티 기반의 예술을 넘어서
한동안 우리에게 관객참여예술은 ‘커뮤니티 아트’라는 단어로 다가왔다. 2000년대 후반 공공미술과 커뮤니티 아트의 물결은 매우 강력했다. 공공적인 이슈와 함께 관람객과의 만남을 기반으로 한 예술은 커뮤니티 아트의 종류로 쉽게 구별되어 왔다. 대부분의 커뮤니티 아트에서 다루어졌던 내용은 매우 첨예했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었는데, 이러한 내용을 다루는 예술가들은 이주민이라든지, 재개발 등 쉽게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박혜민은 공동체적인 문제 의식을 먼저 강조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들, 예술가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적인 문제들에서 출발하여 참여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다양한 장치를 심어 놓는다. ‘전화번호가 적힌 전단지’, ‘여행사 직원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이케아 진열대 같은 전시장’ 등등이 그러한 장치들이다. 그렇게 낮은 문턱에서 시작한 작업의 여정은 어쩔 때는 진짜이기도, 어쩔 때는 가짜이기도 한 상황들이 뒤섞여도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상황으로서 연출이 가능한 것이다.
박혜민의 작업에서 관객은 이렇게 자신의 역할이 감상자에서 참여자로 변화하는 순간이 의식하지 못할 만큼 짧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박혜민 작가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문화적인 스펙타클을 얼마나 잘 인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관계 맺기’의 과정을 넘어 대중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문화적 구조에서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작가의 관찰력이 기반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